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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문화사에서 발전의 추구(quest for progress)는 자연에 대한 모순된 욕망, 혹은 원형에 대한 갈망을 동반하는 것처럼 보인다. 자연 상태의 극복을 약속하는 기술 혁신은 집단적으로 갈구해온 인습화되고, 이상화된 것, 즉 고대의, “원시적인(primitive)” 형태로의 회귀와 대조를 이룬다. 자연 그 자체를 예를 들어 낭만적인 과장으로 내면의 반영이라고 하거나 또는 단순하고, 사색적인 활동을 뜻한다 할 수도 있다. 두 가지 모두 우리를 소외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인도해줄 것만 같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Henry David Thoreau)의 ”월든(Walden)” (1854)은 이러한 갈망을 실제로 그려낸다: 발전과 기계장치의 산업화 시대 속에서 벗어나 자연에서 조화를 이루며 사는, 대안적인 삶을 살고 픈 갈망 말이다.
한때 꽤 급진적이었던 월든의 사상은 오늘날 오히려 대중화되었다: 자연보호운동을 시작으로, 68세대나 “죽은 시인의 사회” 영화 (영화 속 모임은 월든을 인용하며 시작한다.)의 영감이 되거나 컴퓨터 게임의 기초가 되기도 한다. ‘월든’은 오늘날의 소비사회에 당도했다.
오늘날 “휴식(Rest and Relaxation)”은 경제적인 요소가 되었다. 이것은 참 자아를 발견하고자 하는 이들이 찾는 건강 관광(health tourism; 의료관광을 포함하는 개념)의 한 파트로 급부상 중이다. 게다가 휴식은 인스타그램과 같은 미디어에서 점점 정형화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우리는 실시간으로 휴식에 대해 배운다. 휴식이 어떻게 보이는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또 얼마나 자주! 그러나 양질(quality)이라는 표준화되고 이미 세계화된 개념이 퍼지고 있고, 우리가 이 개념이 기대한대로 수행하도록 훈련되는 게 익숙하다는 건 여기서 명확하다. 더 본질적이고 내밀한 자연으로 떠남으로써 이러한 최적화에 대한 대중적 명령으로부터 벗어나는 게 가능할까? 휴식은 진정 어디에 속하는가? 이것 또한 상위집단이 결정을 내리는가? 휴식은 개인적인 것인가, 아니면 외부 통제가 필요한 것인가?
김자이 작가는 대한민국 광주 출신이다. 한편, 한국은 근면과 전략으로 서양 국가들을 경제적으로 따라잡은 아시아의 호랑이 국가 중 하나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은 경제성장의 목표 앞에 휴식의 가치를 잃어버린 나라이기도 하다. 한국은 주당 최장 68시간의 근로시간(주당 정규근무 40시간, 주말근무 16시간, 초과근무 12시간)으로 최근까지도 연간 2,256시간에 달하는 평균 근로시간을 보인다. 우리 독일인은 보통 그보다 1/3을 적게 일한다. 휴일은 시간 낭비로 여겨진다.
문화적으로 각인된 그녀의 배경에 반하여, 김자이 작가는 ‘휴식의 기술’이라는 주제를 작가 본인뿐 아니라 그의 나라에서도 배우지 않은, 매우 개인적인 방식으로 다룬다. 작가의 장기 리서치 초기단계는 가능한 휴식의 기술들에 관련된 기초적인 기록과 통계에 바탕을 두는데, 이는 오늘날 작가의 창조적 어휘로써 역할을 하고, 작가의 예술작품과 결합된다.
작가는 휴식을 동적인 휴식과 정적인 휴식의 형태로 나눈다. 동적인 휴식은 운동이나 여행, 또는 수공예 활동 등 능동적인 활동이 간접적으로 개인의 에너지 밸런스를 채워주는 걸 의미한다면, 정적인 휴식은 수면이나 명상 등 실제로 육체적인 몸 자체를 쉬게 하는 걸 의미한다. 동시에 작가는 각자 최적의 휴식방식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본다; 즉, 휴식은 매우 사적인 일이다. 그러므로, 자크 라캉(Jacques Lacan)이 언어에서 무의식의 구조화에 천착하는 것처럼, 작가는 휴식의 개별적인 구조화 속에서 무의식적 일부를 연구한다.
휴식의 기술 2(Skill of R&R 2) 전시에서, 작가는 리서치의 공간을 확보할 뿐만 아니라 개별적인 마주침의 가능성까지 열어 두었다. 단순히 그녀의 작품을 대중에게 전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super+CENTERCOURT 공간을 개별적 리트릿 장소로 전환시켰다. 관람자들은 Maxvorstadt 거리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숲속 풍경으로 발을 들여놓는다. 이곳에서 관람자들은 거리의 지나가는 사람들을 엿보듯이 돌아볼 수 있다. 이곳에 들어옴으로, 관람자들은 공공장소에서 신체적으로 벗어난다. 그들은 한 걸음 물러 서, 일상적인 것에서 떨어져서 잠시 멈춘다. … - 그들은 월든같은 경험을 하는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김자이 작가의 초대를 따라 그녀의 개별적인 휴식의 우주 속으로 들어가면, 방문객들은 필연적으로 분위기와 공간의 소비자가 된다. 작가의 활동적인 휴식의 결과물로 둘러싸인 곳에서, 전시장의 관람객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음(doing nothing)”에 푹 빠져들거나,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예약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작가의 환대 제스처는 적어도 양가적인 것으로 설명될 수 있는데, 한편, 작가는 본인 자신의 휴식과정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뜨개로 된 초록 줄기들을 보여주며 본인의 휴식의 기술을 드러내는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 작가는 본인 작품을 전시하며 관람객들의 관심 또는 심지어 예술 신으로부터의 인정을 요구하는 일에 필연적으로 관여한다.
기존의 수동적이고 소비적이라고 여겨지는 관람객의 역할과 적극걱이고 무언가를 제공하는 작가의 역할을 의도적으로 섞어 놓음으로, 작가는 가치 전달, 문화 전달, 소통(교환방식이라는 기초로)의 과정이 얼마나 서로 단단히 엮어있는지 드러낸다: 전시에서 자신의 휴식 방법에 대한 서베이에 참여한 모든 관람객은 작은 통 하나를 교환으로 받게 되는데, 꽃씨로 채워진 이 통과 작가의 이메일 주소를 받게 된다. 상징적으로, 김자이 작가는 누군가의 휴식에 관한 정보를 자신의 휴식방법의 아주 작은 재료로 교환한다. 그러나 이 최초의 거래 활동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씨앗이 발아되어 싹이 나는 사진을 요청함으로, 작가는 참가자들의 휴식의 결과물을 요구하게 된다. 동시에, 이 조사를 통해 수집된 데이터와 정보는 결과적으로 다른 전시로 연결되고, 그렇게 함으로 결국 한국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김자이 작가의 ‘휴식의 기술 2(Skill of R & R 2) 전시는 휴식을 취하면서 깊이 생각해볼 다양한 상황을 제공한다: 경제와 영적인 것 사이의 암시되는 적대적 관계에 대해, 거래의 세계적 과정에 대해,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사이의 접속에 대해 말이다. 결국, 휴식의 개념에 대한 그녀의 조사과정과 휴식의 시각적 언어를 다루는 과정을 통해, 김자이 작가의 예술 활동은 휴식 그 자체의 의식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Viktoria Wilhelmine Tiedeke)